♣ 제주이야기/제주문화유적지답사

명월성지

jejuAngela 2011. 6. 28. 06:30

 

 

 

 

 

명월성지

 

 

 

제주시 북제주군 한림읍 명월리와 동명리

 일대에 남아 있는 명월성터는 조선 중종 5년(1510)에 목사 장림(張琳)이

쌓았던 성터라 합니다.

 

당시 이 근처의 비양도(飛揚島)가

왜군의 군함을 정박하던 곳이어서, 왜군을 막기 위해 이 곳에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3020척,

높이가 8척이며 동·서·남쪽에 성문이 있었다고 하고요, 

 

성 안에는 샘이

있어 마치 냇물처럼 물이 솟아나므로 항상 물걱정이

없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성을 지키는 장수 한 사람이 있었고,

숙소인 객사와 무기를 저장하는 창고 등이 있었으며, 노를 젓는 군사

103명이 배치되어 있고,

 

 

선조(재위 1567∼1608) 때에 크게 고쳤는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성곽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현재 넓은 도로 옆의 성만 일부분이

복원되어고, 나머지는 옛 모습 그대로 넝쿨에 뒤얽혀 마을 남쪽에 남아있습니다.

 

성 위에 올라서면

  

 

바로 앞으로 마을이 펼쳐져 있으며,

 

 

멀리 제주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여

당시 해안으로 침입해 오는 적들을 신속히 격퇴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지는 조선(朝鮮) 중종(中宗)

 5년(1510) 목사(牧使) 장림(張琳)이 명월포(明月浦)에 쌓았던 성터라고 합니다.  

 

 

당시 비양도(飛揚島)가

 왜선(倭船)의 정박처(碇泊處)여서 이곳에 쌓은 것입니다.

 

그후 선조(宣祖) 때 목사 이경록(李慶錄)이 개축한 것이

 오늘날의 성벽으로, 석축의 둘레는 3,020자(尺) 높이가 8자(尺) 규모입니다

 

 동문·서문·남문이 있으며 성 안에는

샘이 있어 마치 냇물처럼 물이 솟아나므로 사철 물걱정이 없었다 합니다

 

성을 지키는 성장(城將) 한 사람이 배치되어 있었고,

객사(客舍)·군기고(軍器庫) 등이 있었으며, 해안에는 수전소(水戰所)도 있어서 판옥선(板屋船)과

노 젓는 군사 103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하는군요...

 

 

 만호 공덕비 5기와 영조 40년(1764년)부터 고종 32년 (1895년)까지

 131년동안 명월진 수군의 책임자로 재임했던 역대 만호 112명의 명단비가 함께 모셔져 있고.

 

만호라는 직책은 조선후기 무관직(종4품)으로서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던 명월진에는 다른 진보다 직급이 높은 만호를 두어 수군을 지휘하게 했다고 합니다.